투명한 경매장을 톺아보다
지난 목요일인 10월 15일, 반가운 업데이트 소식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보는 이에 따라서는 신규 콘텐츠인 ‘계시의 밤’보다 더욱 인상 깊을 내용인데요. 경매장 개선안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http://df.nexon.com/df/pr/actupdate/MDAxMzE/?cat=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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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원활하고 투명한 경매장을 만들기 위해 일부 추가적인 정보 제공과 편의성 개선을 진행했습니다. 해당 내용은 10월 15일(목) 업데이트를 통해 추가 될 예정이며, 아래 업데이트 내역을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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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사항을 찬찬히 살피면 눈여겨볼 게 많습니다. 제법 오랫동안 경매장을 이용한 모험가로서 왜 이제야 이 좋은 걸 해주느냐고 투덜댈 만큼, 요긴하게 쓸 만한 추가 내역이 가득하죠. 그 중 몇몇을 간략히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하트 100만 개를 보내고 싶은 즐겨찾기 기능이 드디어 나왔답니다. 자주 찾는, 혹은 추후 적정가 구매를 노리는 아이템을 콕 집어 저장할 수 있는데요. 매번 번거롭게 검색어를 입력하지 않고, 곧장 원하는 물건을 알아볼 수 있게 변했습니다. 매일 열성적으로 활약하는 모험가의 1순위 필수품인 ‘피로 회복의 영약’을 즐겨찾기로 추가해두면 모험이 좀 더 간편해지겠죠?
피로 회복의 영약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단축검색 기능도 매력만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이템 이름의 띄어쓰기를 기준 삼아 앞글자만 따와서 검색할 수 있도록 달라졌지요. 기존에는 피로 회복의 영약을 경매장에서 구하고자 한다면 ‘피로’나 ‘영약’을 일단 입력한 후 예상 검색어에서 골라야 했었습니다. 아니면 ‘피로 회’, 이보다 더 줄여 ‘로 회’ 같은 값을 입력하는 수단을 썼어야 했죠. 하지만 이제는 그냥 피로 회복의 영약을 단 두 글자로 줄여서 ‘피회’만 입력하면 끝.
과연 내가 괜찮은 가격에 아이템을 구매하는 것일까 의심스러운 분께 제격인 기능도 추가되었습니다. 이름하여 시세검색! 검색한 시점부터 최대 100개까지, 이보다 거래내역이 적을 시에는 최대 1개월 전까지 해당 아이템 시세를 쓱싹 알아볼 수 있죠. 단, 업데이트 이후부터 거래내역이 적용되니 본격적으로 시세검색 기능을 활용하려면 데이터가 좀 더 쌓인 후일 듯합니다.
그밖에는 필요한 물건을 싹 긁어올 수 있는 일괄구매 기능, 그리고 아이템 카테고리를 이전보다 더 명료하게 수정한 점을 꼽을 수 있습니다. 기존 악세서리 항목에서 분리된 칭호 카테고리만 하더라도 사용자 경험을 적극 반영한 사항이라 할 만하죠. 예전에는 칭호를 경매장에서 구하려거든 직접 명칭을 입력하거나 대분류인 악세서리 카테고리를 일단 클릭한 다음, 소분류인 칭호 카테고리를 또 눌러야만 했으니까요. 불필요한 단계를 줄여서 이용자의 편의성을 높인 예입니다.
그런데 앞서 다룬 변경사항보다 쌍수 들고 환영할 개선안은 정작 따로 있습니다. 판매자 정보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끔 모험단명을 일부 노출하도록 바꾼 거죠. “(기존)보다 원활하고 투명한 경매장을 만들기 위해 일부 추가적인 정보 제공과 편의성 개선을 진행했”다고 밝힌 개발자 코멘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번 경매장 업데이트는 투명성에 방점을 찍었습니다. 판매자의 인적사항까지는 아니더라도 모험단명을 일부라도 공개한 것을 이제 와서 무엇보다 환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미리 말씀드리자면 다소 긴 이야기가 될 듯합니다. 그 까닭을 알고자 한다면 경매장의 변천사를 대략이나마 이해할 필요가 있거든요.
우선 아라드에 경매장이 맨 처음 생겼을 적에는 판매자 캐릭터명이 전부 드러나 있었습니다. 가령 제가 경매장에 ‘무색 큐브 조각’ 1개를 100골드에 판매한다고 칩시다. 경매장에 아이템을 올린 즉시, 가격과 함께 제 닉네임인 ‘MAN’이 고스란히 보였습니다. 판매자가 누구인지 확실히 알 수 있었기에 1:1 메시지를 보내 가격 흥정을 할 수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하트비트 메가폰을 써서 고래고래 외쳐도 판매자랑 연락이 닿을락말락한 지금 상황에서는 상상조차 어려운 일이었죠.
그러던 어느 날―
정확히는 2010년 9월 9일 업데이트 이후로 경매장이 전보다 불투명하게 변하고 맙니다. “판매자의 캐릭터명 일부가 특수문자로 표시됩니다.”라는 한 줄 패치 내역이 오늘날 대다수 모험가가 경매장을 불신하도록 만든 원흉이 될 줄이야. 심지어는 정작 뚜껑을 열고 보니, 캐릭터명 일부가 아니라 전부 *****라는 특수문자로 가려져서 이후로는 판매자 전원이 베일에 싸이게 됩니다.
http://df.nexon.com/df/news/update?page=19&mode=view&no=8518
액션쾌감!!! 던전앤파이터 - 9/9(목) 업데이트 안내(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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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두고 당시 모험가들이 가만히 있었을까요?
당연히 아닙니다. 운영진 측에서 뒤이어 업데이트 내역을 “(수정) 판매자의 캐릭터명이 특수문자로 표시됩니다.”라 고쳤다 해도 후폭풍이 상당했습니다. 왜냐하면 경매장에 올라온 물건을 흥정할 수 있던 기회 자체가 사라져서 그렇습니다. 딱 봐도 시세보다 너무 비싸다면 판매자랑 싸바싸바해서 좀 더 저렴하게 구할 방법이 영영 없어진 겁니다.
어째서 이런 패치를 했어야 했느냐, 최대한 개발자의 입장에서 썰을 풀자면 ‘수수료’ 탓일 테지요. 경매장을 통한 것보다 모험가간 트레이드창 위에서 나누는 거래가 판매자에게 돌아오는 골드가 좀 더 많았거든요. 구매자는 물건을 싸게 사서 좋고, 판매자는 수수료를 덜 떼어서 좋으니 나름 WIN-WIN 관계였습니다. 한데 개발진이 원한 건 이게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경매장의 수수료를 이용하여 아라드의 골드 경제를 원활하게 조정해보려고 했던 게 다소 틀어진 셈이니, 결국 칼을 빼들고 말았던 거죠.
그래도 아라드의 경제를 위한 일이라 여겨 수긍하는 모험가 또한 이따금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 경매장의 판매자 비공개를 옹호하는 이들도요. 판매자명이 그대로 보인다는 점을 악용하여 입에 담기 심한 욕설을 쏟아 붓는 비매너 플레이어도 존재하긴 했으니, 기존 제도가 누구에게나 언제나 좋았던 것은 사실상 아니었던 겁니다.
하지만 판매자를 알 수 없게 되자 다른 문제가 서서히 불거졌죠. 모험가 거의 모두가 치를 떠는 일명 ‘혐사꾼’이 아라드 시장 경제에 하나둘 군림하기 시작한 시기를 이때쯤이라 봐도 될 만큼, 경매장의 암흑기가 도래합니다. 물건을 싼 값에 싸서 구매가보다 비싸게 처분하는 행위 자체는 자유 시장경제 사회에서 권장할 만한 재테크라 할 법합니다만, 매물을 싹 쓸어 담아 시세 자체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가히 독과점에 이르면 이야기가 또 달라집니다. 소비자를 기만하는 매매업자에게 수시로 철퇴를 내리는 감시기구가 아라드에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속수무책으로 많은 이들이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레벨 성장 구간에서 쓰곤 하는 마법봉인 아이템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대개 이러한 아이템은 보통 수만 골드 내외인데 느닷없이 수십만 골드로 평균가가 훌쩍 뛴다거나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면? 유감스럽게도 분야를 가리지 않고 실제로 그래왔던 터라 혐사꾼은 두고두고 문제시되었습니다.
이를 두고 윤명진 전 디렉터는 이런 이야기를 꺼낸 바 있습니다. “최근 기업형 장사꾼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던파의 구조적인 문제를 이용하여 시세 차익을 노리는 계정들이 증가하는 추세”라고 운을 띄우며 「경제 및 아이템 파밍 시스템에 대하여」라는 개발자노트를 올렸었죠. 이게 3년 전의 일인데 경매장을 개선하는 한편, 모험가간 트레이드 시에도 수수료를 부과하도록 제도를 변경했습니다. 비정상 거래를 바로잡겠다는 취지에서 하는 개혁이라 당시로서는 아쉬워도 어느 정도 수긍하는 분위기였답니다.
http://df.nexon.com/df/mediazone/magazine/devnote?p=web&mode=view&no=936828
액션쾌감!!! 던전앤파이터 - 경제 및 아이템 파밍 시스템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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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내던질 법도 합니다. 트레이드 수수료가 신설되었으니 경매장의 판매자 정보를 공개해도 괜찮지 않느냐, 같은 물음이요. 경매장이든 1:1 트레이드든 양쪽 다 수수료 나가는 건 마찬가지가 되었으므로, 초기 경매장처럼 판매자에게 직접 메시지를 보내 흥정하는 일을 허용해줘도 될 만한 상황에 이른 겁니다.
아라드에 쭉 몸담았던 분들이라면 익히 아실 테지만, 이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윤명진 전 디렉터의 개발자노트가 공개된 이래로 3년이 지난 최근까지 여전히 판매자명은 수수께끼인 채로 남아 있었답니다. 전부까지는 아니더라도 판매자 정보를 일부 공개하는 일조차 깜깜무소식이었습니다. 그 배후에서 혐사꾼, 아니 ‘기업형 장사꾼’이 무슨 중상모략을 벌이는지 알 길이 없는 채, 그저 어쩔 수 없다며 체념해야만 하는 건지 차츰 지쳐갈 무렵…. 던전앤파이터 역사상 한 손가락으로 꼽을 만한 대형사건이 하나 뻥 터지고 말았죠.
떠올리고 싶지 않은,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하는 희대의 운영자 직위 남용 사건.
그 날 이후로 아라드에 우뚝 떠오른 키워드는 ‘공정성’이 아닐까 합니다. 네오플 직원이면 뭐든 다 조작해서 해먹을 수 있지 않느냐는 불신을 어떻게든 말끔히 떨쳐내려면 웬만한 각오로는 어림도 없는 일. 대표이사의 사과문과 역대급 보상으로 급한 불은 일단 껐다 해도 후속 조치가 반드시 뒤따라야 했습니다.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이번 투명한 경매장 업데이트가 이뤄졌다고 보는 게 정황상 타당하겠지요.
이렇게 쓰고 보니,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옛 속담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경매장 개편 시기가 매우 늦은 감이 있다는 건 누구도 부정하기 힘들겠지요. 그 계기가 참 정말 아주 매우 안타깝기 그지없지만, 이제라도 하나씩 바로잡아나가려는 네오플을 모험가로서 응원해주지 못할 것은 또 없겠죠. 부디 이와 같은 행보가 앞으로도 쭉 이어지길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