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타 상자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오늘은 질문 하나를 던지며 키보드에 손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께서 생각하시는 던전앤파이터(이하 '던파')의 최종 콘텐츠는 무엇입니까? 

 

아마 모험가마다 답변이 제각각일 텐데요. 보편적으로는 사도 레이드, 1티어 신화 파밍, 에픽 장비 풀세트 졸업, 그밖에 광부 등 쉽게 떠오르는 모범 답안이 있지요. 그런데 혹시 '룩덕질'이라 자신 있게 말씀하실 분은 없으신가요? 만약 그렇다면 지금부터 풀어쓸 이야기에 공감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단 룩덕질이라는 용어가 생소한 분도 계실 듯하여 가볍게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네이버 국어사전에 의하면 어떤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여 그와 관련된 것들을 모으거나 파고드는 일을 '덕질'이라 정의하고 있는데요. 그렇다면 룩(look)과 덕질의 합성어인 룩덕질의 뜻은? 여러 아바타를 총동원하여 마음에 드는 외형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일련의 행위 쯤으로 명명할 수 있을 겁니다.

 

예리한 독자께서는 이미 짐작하셨을 테지요.

제목부터 아바타 상자를 언급한 이상, 이 글은 결과적으로 모험가의 룩덕질을 위한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입니다. 룩덕질이 최종 콘텐츠라 굳게 믿고 있는 분께 소소하게나마 힘을 주고자 8월의 던파캐스트 『아바타 상자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지금 바로 시작합니다.  

 

예상하셨다시피 저도 룩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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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보다 더욱 나빠진 상황

불과 1년 전 조금 못 된 때에 『아바타 풀세트 상자를 돌려주세요!』라는 글을 썼던 적이 있었습니다.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애초에 직업 구분이 없던 아바타 풀세트 상자에 '불필요한 제한'이 생겨, 직업별로 외형 맞추기에 차등이 발생하는 문제가 있으니 원래대로 돌려달라." 이와 같은 비판으로부터 시일이 꽤 지났음에도 상황은 나아지긴커녕 오히려 열악해졌다면 여러분은 믿으시겠습니까?

 

https://ludolooge.tistory.com/204

아바타 풀세트 상자를 돌려주세요!

 

어째서 현실이 더 팍팍해졌느냐고 감히 말할 수 있는 것일까. 

그 해답은 어느 소모품 아이템의 변천사에 있습니다. 정확히는 패키지 구성품 중 하나인 아바타 풀세트 상자에게 일어난 모종의 변화 탓입니다. 

 

2018년은 가히 룩덕질을 사랑하는 모험가에게 최고의 한 해였습니다.

정초부터 등장한 '해군 제독 패키지'에서 입이 마르고 닳도록 칭찬해도 모자랄 아바타 풀세트 상자의 초기 형태가 처음 등장했었거든요. 2017년까지만 하더라도 패키지 구매할 때, 아바타 옵션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정해야 개봉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게 해군 제독 패키지부터 아바타 풀세트를 따로 떼어 별개의 상품으로 취급하기에 이르렀지요. 

 

쭉 이런 흐름을 유지할 줄 알았으나 2019년, 그것도 역시 정초부터 뭔가 달라진 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작년 1월, 모험가라면 결코 소홀히 하기 어려운 '전직의 서 패키지', 다들 기억하시죠? 그때도 아바타 풀세트 상자는 있긴 했습니다. 개봉 기한이 무제한이었던 것도 같았습니다. 하지만 직업별로 구분을 두어, 룩덕질에 방해 요소로 새롭게 자리매김하고야 맙니다. 어떠한 차이인지 표로 보시죠. 

 

아이템명	이용 가능 대상자
해군 제독 아바타 풀세트 상자	모두
전직의 서 아바타 풀세트 상자[직업별]	해당 직업만

 

총검사를 예로 들어봅시다. 재작년에 나온 해군 제독 아바타 풀세트 상자, 작년에 출시된 전직의 서 아바타 풀세트 상자. 이 중 어느 쪽이 더 총검사 아바타 매물을 구하기 쉬울까요? 아무래도 같은 조건이라면 당연히 전자가 우세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전직의 서 아바타 풀세트 상자[총검사]는 전직의 서 아바타 풀세트 상자[남귀검사/다크나이트]보다 물량 자체가 적을 것이며, 결국 입수하기가 더 까다로울 테니까요. 유저간 패키지 거래 시, 잠재적 구매자를 예상하고자 판매자가 직업 인구수를 먼저 고려하는 게 어제 오늘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 여기까지가 이전 작성글인 『아바타 풀세트 상자를 돌려주세요!』의 비판점이었습니다. 당분간 저 글을 끝으로 아바타 상자 이야기는 할 일이 없으리라 예상했으나…

 

 

자세히 보면…

 

 

 

올해, 그러니까 2020년의 시작을 알렸던 '각성의 서 패키지'부터 아바타 상자에도 기한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그동안 무제한이었던 시절이 막을 내린 것도 모자라, 현재 절찬리 판매 중인 '사도의 강림 패키지'도 어김없이 똑같은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삭제 기한 없는 아바타 풀세트 상자는 이제 패키지 구성품 내에 없을 거라는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입니다. '신비한 재봉틀' 같은 특수 이벤트가 없는 한 말입니다.

 

아이템명	이용 가능 대상자
해군 제독 아바타 풀세트 상자	모두
전직의 서 아바타 풀세트 상자[직업별]	해당 직업만
각성의 서 아바타 풀세트 상자[직업별]	삭제 기한 내에 해당 직업만

 

 

아바타마켓이 있었기에

아바타 풀세트 상자의 사례만 본다면, 룩덕을 추구하는 모험가에게 아라드가 갈수록 야박해지는 듯싶습니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기도 합니다. 갑자기 무슨 소리냐고요? 올초 업데이트된 '아바타마켓'으로 인하여 기존 대비 매우 아주 무척 굉장히 엄청 룩덕질이 편해졌다는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어서랍니다. 

 

아라드 패션피플의 성지, 아바타마켓

 

왜 이제야 나왔느냐 도리어 따지고 싶을 만큼, 사랑스러운 아바타가 가득한 멋진 곳이죠. 매일 발도장을 찍으며 매번 새로운 꾸미기에 도전하는 모험가도 있을 정도로 여전히 이용객의 발길이 잦은 장소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아바타마켓 덕분에 꽤 손쉽게 아바타를 모을 수 있었습니다. 판매 종료를 이유로 더 이상 구하기 난감했던 아바타 세트를 클릭 몇 번으로 인벤토리에 들여올 수 있게 된 거죠. 작년만 하더라도 아바타 세트를 구하려거든 경매장에서 부위별로 하나씩 검색을 해가며 체크를 했어야 했으니까요. 

 

아바타마켓을 잘만 이용하면 철 지난 이월 상품도 상당수 입수할 수 있습니다. 던파 공식 홈페이지의 '던파쇼룸'이나 NPC 힐스를 통해 '아바타 구경하기'로 과거에 출시된 아바타를 조목조목 파악하는 건 기본 중의 기본. 명칭만 알면 아바타마켓에서 검색으로 한 방에 끝!

 

앞서 언급했듯이 아바타 풀세트 상자가 초기 모델로부터 점점 품질이 저하된 이력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24시간 풀세트 거래가 가능한 아바타마켓이 있었기에 예전보다 상황이 썩 나쁜 것만은 아닌 게 사실입니다.

 

아바타 풀세트 상자의 연이은 디그레이드가 모두 아바타마켓을 띄워주기 위한 방책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기간 무제한인 아바타 상자가 신규 패키지 때마다 등장한다면, 아바타마켓이 지금처럼 부흥할 수 있었을까요? 상자를 개봉해야만 아바타가 생성되는 만큼, 경매장에 상자인 채로 매물이 넘쳐난다거나 누군가 매점매석으로 상자를 장기간 독점하는 등 자칫 신규 물량이 덜 풀린다면 어떨까요? 아바타마켓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상품수가 줄어드는 총체적 난국일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일부 악덕 자본가(…)가 경매장을 어떻게 갖고 노는지 수차례 경험하기도 했고, 더는 비슷한 일이 없도록 네오플 측에서 뭔가 했어야 했을 겁니다. 아바타 풀세트 상자가 지금과 같은 길을 걷게 된 것은 어쩌면 아바타마켓 활성화 같은 이유에 의한 거라는 추측도 해볼 만합니다. 삭제되기 전에 어떻게든 시장으로 물량이 쏟아지긴 할 테니까요.

 

한데 만약 그렇다고 할지라도 덜 아쉽다는 뜻은 또 아닙니다. 비교적 최신 콘텐츠라서 힘을 실어주는 것과는 별개로, 아바타마켓이 아바타의 희소성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해줄 수 있으리라 기대하진 않습니다. 매물이 부족한 아바타를 구하는 일은 이 시간에도 정말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판매 종료나 단종을 이유로 구매 시기를 놓쳐 지금도 애타게 찾는 아바타가 하나라도 있진 않으신가요? 더불어 성별, 혹은 직업별로 아바타 공급량에 따른 애로사항이 과장 좀 보태서 천양지차와도 같아서, 누구는 웃고 누구는 우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아무리 편의성으로 무장했다 하더라도 만족스러운 재고가 없는 이상, 시장은 제기능을 할 수 없습니다. 번번이 원하는 아바타가 시장에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어느덧 아바타마켓을 향한 발걸음은 차츰 줄어들겠죠. 

 

 

 

 

시간을 되돌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아바타 풀세트 상자만 있었던 때라면 요구사항은 다음과 같았을 겁니다. 패키지 판매 시기에 아라드 접속을 못했다든지, 타 직업과 비교하여 인구절벽인 터라 매물이 없어 좌절했다든지 하는 불상사는 더 이상 No! 아바타 풀세트 상자의 기한과 직업별 구분을 원위치시켜달라! 이러면 문제는 일단락되었을 테지요.

 

그렇지만 아바타마켓이 그 사이에 새롭게 생겼고, 아바타를 다루는 모험가의 행동도 전과는 달라졌습니다. 단순히 "원래대로 돌려주세요!"라고 말하기에는 문제가 약간 더 복잡해진 셈입니다. 아바타마켓에 더욱 더 사람을 모으려면 삭제 기한이 없는 아바타 풀세트 상자는 별 도움이 안 되므로 현 시점에서 썩 유효한 주장이 아닌 겁니다.

 

 

그래서 제안합니다.

판매 종료된 아바타의 '복각'과 '상시 판매'를. 

 

 

가령 패키지 상품이 나온 뒤부터 아바타만 별도 취급해, 일정 기간 뒤에 복각하여 세라샵(또는 아바타마켓)에서 상시 판매를 한다면? 

이럴 경우, 지금 같은 아바타 상자의 디그레이드 문제는 크게 염려할 일이 아닙니다. 인기 직업이 아니어서 매물 자체가 없어 엉엉 우는 일은 없을 터이며, 돈만 있다면 더 다양한 외형을 거머쥘 수 있다는 확실한 희망이 생기는 거죠. 애당초 돈이 있음에도 원하는 물건을 살 수 없는 일이, 그것도 밸런스에 하등 영향을 주지 않는 꾸미기 아이템에서 일어난다는 거 자체가 난센스(nonsense)였던 건 아닐까요?

 

아바타 기획자와 도트 디자이너 등 개발진의 피눈물이 담긴 역대(歷代) 아바타 모두를 조만간 세라샵에서 만나길 기원하며, 글을 마칩니다. 지난 패키지 아바타나 심지어 단종된 아바타도 아라드의 수많은 룩덕이 간절히 염원하고 있음을 기억해주시길 바랍니다 :)

 

 

 

 

 

[참고자료]

해군 제독 패키지 정보

http://df.nexon.com/df/news/seriashop/?mode=view&no=182

액션쾌감!!! 던전앤파이터

전직의 서 패키지 정보

http://df.nexon.com/df/news/seriashop/?mode=view&no=216

액션쾌감!!! 던전앤파이터

각성의 서 패키지 정보

http://df.nexon.com/df/news/seriashop/?mode=view&no=263

액션쾌감!!! 던전앤파이터

 

[썸네일 이미지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Edvard_Munch,_1893,_The_Scream,_oil,_tempera_and_pastel_on_cardboard,_91_x_73_cm,_National_Gallery_of_Norway.jpg

File:Edvard Munch, 1893, The Scream, oil, tempera and pastel on cardboard, 91 x 73 cm, National Gallery of Norway.jpg - Wikimed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