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 여름과 겨울은 게임 업계에서 매출을 끌어모으기 좋은 시기로 꼽힙니다. 아시다시피 교육 과정을 밟고 있는 이들을 위한 방학이 있으니까요. 그밖에는 설날이나 추석 같은 명절 특수 대목을 들 수 있을 테지만, 상대적으로 한가한 시간을 활용하기 좋은 방학 시즌만 못할 겁니다.
던전앤파이터(이하 ‘던파’) 역시 게임 업계의 이와 같은 방향성을 고스란히 따라갑니다. 혹은 2005년부터 서비스한 장수 게임이니 오늘날 매출 극대화 시기를 확립하는 데에 업계에 모범 사례로서 적잖이 영향을 끼쳤을 테지요. 던파의 무엇을 모범 사례로 들 수 있느냐고요? 여름에는 n주년 행사로, 겨울에는 페스티벌로 빵빵한 이벤트와 업데이트를 어느 정도 보장해서랍니다. 매년 팬서비스 겸 신규 업데이트 발표를 목적으로 대형 축제를 기획하는 게임이 대한민국에 그리 많지 않다는 것만 봐도 대단하다고 할 수 있죠.
어디 그뿐인가요. 장수한 국산 온라인게임은 꽤 있지만 던파처럼 PC방 순위 상위권에 꾸준히 오르는 경우는 드뭅니다. 과거에 비교하면 레드오션이기는 해도 여전히 게임 업계로서는 군침이 도는 중국에서 인기를 유지하는 것만 해도 그렇습니다. 여러모로 놀라운 게임임을 부정할 수 없답니다.
이런 던파가 어느덧 15주년을 앞두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 해도 바뀌지 않았고 한참 남았습니다만 내년이 15주년이라는 점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다가올 여름 전에 난데없는 서비스 종료 따위의 청천벽력이 들리지 않는다면 헨돈마이어 광장에는 성대한 축포와 함께 무언가가 우뚝 새롭게 서 있겠죠.
으레 다가올 축제는 지난여름보다 더 굉장하리라 예상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무려 15주년입니다. 굳이 목혼식이나 은혼식처럼 서양에서 들여온 5주년 단위 결혼 축하 풍습을 언급하지 않아도 사회 전반에서 5년 단위의 기념행사를 꽤 챙기는 경우는 많이 보셨을 겁니다. 창립 3주년보다는 5주년이, 5주년보다는 10주년 행사가 거창한 법이니까요. 즉, 올해 14주년 축제보다 내년이 뭔가 더 엄청나겠거니 기대할 만하다는 뜻입니다.
과연 무엇을 기획팀에서 준비하고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기발하면서도 그동안 답답했던 속을 시원하게 풀어줄 화끈한 업데이트이기를 바랄 뿐인데요. 게임 내적인 발전 못지않게 외적으로도 모험가의 갈증을 해소해줄 아이템이 등장해도 좋을 만한 시점입니다. 요컨대 우리가 여태 했던 모험을 한 데 모은 설정자료집(設定資料集) 같은 게 어떨까 합니다. 그것도 15주년을 기념하는 의미로!
설정자료집을 바라는 까닭
대내외적으로 게임의 운명을 견인한 개발자의 노고에 힘입어 우리 모험가는 그동안 숱한 이야기를 자아낸 바 있습니다. 그란플로리스의 숲을 탐험한 후 아득한 하늘성에 오르고, 흉흉한 전염병이 도는 폐허를 조사하는가 하면, 차원의 틈을 넘어 또 다른 아라드에 발을 디디는 등 이 글을 눈에 담고 있는 독자라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모험담이지요.
반추해보면 정말 길고도 긴 여정이었습니다. 아라드의 변이를 시작으로 갖가지 사건을 우연히 만난 끝에 다다른 마계. 그런데도 모험은 끝이 날 기미를 보이지 않으며, 이제는 ■■의 □□으로 말미암아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처지에 이르렀답니다.
이대로 다음 모험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것도 좋을 테지만, 잠시 숨을 고르고 쉬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눈앞에서 ■■의 계략을 지켜보고도 순순히 보내주어야 했던 모험가로서 격한 피로감에 휩싸인 탓도 있을 겁니다. 마냥 앞으로만 나아가는 게 답은 아닐지도 모르고요. 따라서 지난 모험을 되돌아보며 어째서 모험을 시작했고, 지금의 ‘나’는 어디에 있는지 스스로 짚어보는 성찰의 시간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순간이 아닐까―라는 회의감이 문득 들기도 했지요.
그러면서 더 나아가 우리에게 비전(vision) 제시를 해주는 길잡이 안내서가 한 권쯤 있었으면 합니다. 2009년 1월에 발간된 <던전앤파이터 아트북>이 그랬던 것처럼요.
역대급 아트북
현재까지 던파를 주제로 출간된 서적은 제법 많습니다. 그 가운데 가이드북이나 코믹, 소설을 제외하면 아트북은 딱 세 권입니다. 앞서 다룬 <던전앤파이터 아트북> 이후로도 <던전앤파이터 아트북 아티스트 버전 (2012.11. 발간)>, <Dungeon & Fighter 3rd Art Book (2016.6. 발간)>이 시중에 나온 바 있지요. 그런데 어째서 가장 초기에 인쇄된 아트북을 콕 집어서 길잡이 안내서라 했을까요?
아트북이 나올 때마다 구매했고, 여전히 모두 보유 중인 독자께서는 아마 동의하실 겁니다. 페이지를 넘기면서 달성했던 업적을 되새기고 미지의 모험을 향한 꿈을 키울 수 있던 책은 단연컨대 첫 번째 책이라고. 왜 그런가 하면 <던전앤파이터 아트북>은 시중에 유통된 2009년 당시, 아라드 모험가로서 해냈던 모험을 총망라한 것도 모자라 범접할 수 없었던 마계를 다룬 바 있어서입니다. 카인이나 힐더, 프레이처럼 여타 모험가가 그 존재를 인지하기도 불가능했던 막강한 사도를 종이 위에 서술한 책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마계에 입성했던 시기는 2016년 가을이니, 무려 7년도 더 전에 모험가에게 마계의 흐릿한 청사진을 그릴 수 있도록 한 겁니다. 얼마 안 된 자료이기는 했어도 그를 통해 다가올 모험을 꿈꾸고 힘을 키운 사람은 분명 한둘이 아니었을 터이며, 저도 그중 하나였답니다.
삽화집이면서 공식적인 설정자료집이기도 했기에 대다수가 <던전앤파이터 아트북>을 기준으로 삼아 저마다의 모험을 떠들어대기도 했습니다. 카인은 얼마나 강할 것이며, 마계는 뉴욕과 얼마만큼 흡사하고, 여성 귀검사는 언제쯤 나올 것인지 등 헤아리자면 한도 끝도 없는 이야기가 너나 할 것 없이 여러 커뮤니티에서 쏟아졌지요. 실제 공개되려면 한참 남은 설정을 놓고 갑론을박 토론을 벌이던 모습쯤이야 우리에게는 그저 흔한 일상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하오나, 딱 거기까지였지요. 던파의 설정자료집이라 할만한 책은 그 뒤로 출간되지 않았으며 이후 나온 아트북은 본연의 목적에 맞게 삽화에 치중했습니다. 여성 프리스트의 초기 일러스트를 빼면 나머지 두 권의 책은 독자에게 다가올 모험이 어떠할지 말해주지도, 기존에 모험가로서 해왔던 도전을 두고 별다른 말을 덧붙이지도 않았습니다.
던파가 정식 서비스된 지 약 3년간 기록을 담아낸 것만으로 270쪽이 넘었던 <던전앤파이터 아트북>. 만약 15주년에 맞춰 설정자료집이 출시된다면? 270쪽만으로는 어림도 없을 것입니다. 어쩌면 상권과 하권으로, 아니면 던전, 캐릭터, NPC, 몬스터 등 각 분야별로 나눠서 내야 할 수도 있겠죠. 그만큼 던파는 시작점부터 꽤 오래 멀리 걸어왔으며 앞으로도 그 끝이 어디인지도 모른 채 걸어 나가야만 하니까요. 어제와 오늘, 그리고 불분명한 내일을 하나하나 정리하는 일은 녹록지 않은 과제임이 뻔해도 이로 인하여 우리가 더 멋진 모험을 만끽할 수 있다면, 그러한 수고쯤이야 마땅히 해야 하지 않느냐―고 일개 유저로서 무책임한 말을 살포시 던져봅니다. 물론 한 손에는 지폐 여러 장을 손에 꽉 쥔 채로요.
이런 설정자료집을 원한다
최근 들어 접긴 했으나 한때 삽화집이나 설정자료집을 모으던 취미가 있었습니다. 좋아하는 작품을 더 아낄 수 있게끔 초기 또는 미공개 설정을 원하곤 했었지요. 그러기에 (솔직히 이렇다 저렇다 풍월을 읊기에는 내공이 한참 모자라지만) 추후 발간될지도 모를 던파의 네 번째 아트북이 어떠했으면 하는지 낱낱이 적어보고자 합니다. 이참에 독자 여러분도 자신만의 희망 사항을 머릿속에 그려보시는 건 어떨까요?
- 풍부한 해설: 비록 담화가 아니라 글을 통한 간접적인 의사소통이라 할지라도, 모험가가 개발자의 의도를 읽을 수 있는 공식 서적이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오프라인 행사에서나 전해 들을 수 있었던 이야기를 정제하여 더 많은 이에게 알린다는 이점을 백 배 살릴 기회겠지요. 풍성하고 다채로운 공식 정보를 마다할 모험가는 없습니다. 프레이 레이드 맵은 제주도를 콘셉트로 삼았다는 일화도 우리는 격하게 사랑하니까요.
- 모두가 ‘몰랐던’ 것: 공식 홈페이지나 여타 대중매체 등 이미 곳곳에서 밝혀진 정보를 있는 그대로 재차 싣는 일은 독자에게 그다지 유용하지 않습니다. 러프 스케치라든가 폐기된 기획이라든가 네오플 본사를 약탈(?)해야만 획득할 수 있는 1급 기밀 같은 게 누구에게나 탐나는 보물일 겁니다. 설정 덕후가 혹할 만한 아이템을 14년차 게임이 설마 모르진 않으리라 믿습니다. 지나간 모험조차도 우리가 전혀 알지 못했던 비밀이 잔뜩 있을 거고요.
- 일부에게만 공개된 것: 이벤트 기간에만 잠깐 모습을 드러냈던 NPC나 배경 이미지, 오프라인에서 한정 공개했던 자료가 이에 속합니다. 더 보태자면 중국이나 글로벌 던파에서만 사용했던 일러스트도 꼽을 수 있겠지요. 이를 한데 모아 보여주는 것도 무척 의미 있는 작업이지 않을까 합니다.
- 캐릭터: 때때로 아라드를 모험하면서 아쉽다고 느낄 때가 있는데 그중 하나로는 플레이어블 캐릭터 고유의 이야기입니다. 모든 캐릭터를 관통하는 흐름을 나무기둥에 비유하자면 캐릭터마다 풀어낼 수 있는 사건은 곁가지라 지칭할 수 있을 텐데요. 기둥만 튼튼한 대나무보다 열매마저 풍요롭게 열리는 사과나무를 바라는 모험가가 훨씬 더 많을 겁니다. 인력 및 촉박한 개발 일정으로 인한 한계일 테지만 천편일률식 각성, 일부 캐릭터에게만 한정된 이야기- 천계에 막 입성했을 적의 거너, 마계에 다시 되돌아온 마법사 –에서 못다 한 한풀이를 15주년 맞이로 상세히 해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정말 대대적인 기획을 염두에 둔다면, 캐릭터마다 책을 내는 방법도 있겠습니다. 캐릭터마다 구성은 같되 특유의 시나리오나 콘셉트를 모조리 한 권에 담아내어, 이 책 한 권이면 해당 캐릭터의 설정 이해를 완벽히 끝낼 수 있는 어마무시한 서적이 나오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유일한 문제는 남성 귀검사, 여성 귀검사, 남성 거너, 여성 거너, 남성 격투가, 여성 격투가, 남성 마법사, 여성 마법사, 남성 프리스트…
- 인터뷰: 던파를 사랑하는 만큼이나 네오플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이도 적지 않습니다. 15주년 설정자료집이라는 타이틀을 최대한 살려, 던파 운영팀의 이모저모를 기록으로 남기는 일은 책을 내는 처지에서나 읽은 입장에서나 저마다 소중한 경험으로 다가올 듯싶습니다. 던파를 만드는 구성원은 이러이러하고 각자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지, 또는 롤링 페이퍼처럼 애증(?)의 던파를 향한 소회를 남긴다거나.
- 아라드의 미래: 마계의 어렴풋한 청사진을 남겼던 <던전앤파이터 아트북>이 그랬듯 모험가의 앞날을 짐작할 수 있는 단서가 여기저기 있기를 희망합니다. 책 한 권(어쩌면 여러 권)을 곱씹고 또 곱씹을 때마다 무한한 가능성이 흘러넘치는 모험이 손에 잡힐 듯 말 듯 두 눈앞에 나타난다면 던파의 수명은 이로써 또 한 차례 늘어나겠지요. 여긴 꼭 가보고 싶다. 이 아이템의 효능이 궁금하다. 이 녀석과는 반드시 겨뤄보고 싶다. 이처럼 모험가의 끝없는 탐구심에 불을 지펴줄 마른 장작이 든든했으면 합니다. 그렇다고 책을 실제로 태우라는 의미는 아닙…
바라는 건 설정자료집뿐만이 아니다
설정자료집으로 연달아 열변을 토한 것 이상으로 15주년에 바라는 점은 사실 한둘이 아닙니다. 15주년 기념 OST라든가 15주년 맞이 공식 소설이라든가, 제대로 끝을 맺지 못했던 공식 코믹스 발간 등 던파라서, 또 던파이기에 다양한 팬서비스를 간절히 원하고 있지요. 정말 염원하는 바를 나열하자면 장기 연재를 해야 할지도 모를 만큼 무궁무진할 겁니다. 당장 예로 들만한 것은 일단 15주년 기념 피규어도 좋은 아이템일 것이며, 옆동네 <사이퍼즈>와의 콜라보레이션도 꿈꿀 수 있겠네요.
그래도 가장 으뜸으로 치는 희망 사항은 던파가 현재보다 내실을 더 튼튼히 다져서 게임 자체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게끔 발전하는 거랍니다. 본작으로부터 파생된 물건이 흥하려면 모름지기 뿌리부터가 탄탄해야 하는 법이니까요. 소년 만화 전개와도 같이, 한계에 다다랐다 싶을 때 그 이상을 보여주는 던파가 되기를요(물론 좋은 쪽으로). 여태껏 잘 해왔으니 15주년은 매우 무척 아주 엄청 기대해도 괜찮겠지요?
그런 고로, 15주년을 미리 축하하며 대성 기원합니다!
부디 올해보다 더 흥하는 아라드 축제로 영원히 기억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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