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화에서는 모험가의 성지순례 명소인 네오플 사옥을 다녀왔었습니다. 그리고 말미에 예고한 바처럼 네오플 사옥과 불과 100m 거리조차 되지 않는 이곳! 넥슨 컴퓨터박물관을 제주도 성지순례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이야기에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下: 네오플 사옥과 함께 둘러볼 만한 제주 여행 코스 ☜
넥슨 컴퓨터박물관은 지리상으로 너무나 네오플 사옥과 밀접하게 붙어 있는 까닭에, 안 보고 그냥 가면 무지 섭한 곳이랍니다. 제주도민이라면 언제든 시간날 때마다 올 수 있겠지만, 타지인의 경우 일석이조의 효과를 제대로 누려야 하지 않겠어요? 시간이 없다거나 귀찮다는 이유로 어느 한 쪽만 보면 나중에 후회할지도 모릅니다.
박물관이라고 하니 왠지 다소 고리타분할 것 같은 우려가 앞선다?
그런 불안감은 넥슨 컴퓨터박물관에 한해서 잠시 접어두셔도 좋습니다. 대한민국의 비디오게임 회사로서 명성이 자자한 만큼 박물관도 게임처럼 즐겁게 꾸며놓았거든요. 오죽하면 영업용 아케이드 게임기가 건물 안에 딱 전시된 것도 모자라 실제 플레이까지 할 수 있을 정도니까요.
게다가 이게 전부가 아닙니다. 넥슨 컴퓨터박물관 말고도 네오플 사옥과 더불어 방문할 곳이 실은 한 군데 더 있답니다. 제주도의 관광 명소로 늘 소개되는 그곳, 이름하여 한라수목원!
'수목원'이라는 말만 들었을 때에는 무슨 재미로 그런 곳을 갈까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물론 수목원이라 하면 보통은 모험가의 눈길을 끄는 오락시설이 있을 리 만무합니다. 제주 한라수목원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지만 천혜의 자연 환경을 품은 제주도에 초점을 맞춘다면 한라수목원도 결코 지나쳐서는 안 될 장소랍니다. 왜 그러한 지 궁금하시다면 이번 글도 잘 읽어주세요.
네오플 사옥 탐방을 마치고 곧장 향한 곳은 넥슨 컴퓨터박물관이었습니다. 오기 전부터 박물관에 대한 다양한 후기를 읽고 왔던 터라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올랐죠. 후기 대부분에는 추천, 강추, 대박이라는 수식어를 남발한 것도 모자라 다음에 또 오고 싶다는 글까지 있었거든요. 과연 정말 그러한 곳인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보고자 했습니다.
넥슨 컴퓨터박물관
주소: 제주 제주시 1100로 3198-8
관람시간: 오전 10시 ~ 오후 6시 (매주 월요일, 설/추석 당일 휴관)
입장료: 성인 8천 원, 청소년 7천 원
공식홈페이지: https://nexoncomputermuseum.org
※ 코로나19로 인하여 별도 안내 시까지 임시 휴업 중
본격적인 관람을 시작하기 전에―
한 가지 특이사항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지난 2월 18일(화)에 찾았을 당시, "시설개보수 공사로 2월 1일부터 3월 12일까지 지하 전시 및 편의 공간 이용 제한"이 걸려 지하 1층으로 내려갈 수 없었답니다. 즉, 본래 볼 수 있었던 시설을 오롯이 만끽하지는 못한 셈이었죠. 따라서 기존에 넥슨 컴퓨터박물관을 다녀온 분과는 후기 내용에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 이 점 유념해주세요.
HCI(Human-Computer Interaction) 학자인 브렌다 로럴(Brenda Laurel)의 1991년 저서 <Computer as Theatre>에서 모티브를 따왔다는 1층. 참고로 해당 서적은 국내에 <컴퓨터는 극장이다>(유민호&차경애 역, 커뮤니케이션북스, 2008-06-25)라는 제목으로 시중에 나온 바 있습니다. 과거에 읽었던 기억을 되살려 간단히 요약하자면, 고대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Poetics)>과 컴퓨터 이론을 맞물려 설명하면서 컴퓨터가 어떻게 서사(이야기)로서 기능할 수 있는지 피력하는 게 책의 주된 내용입니다. 약 30년 묵은 책이라 현재와는 다소 동떨어진 부분이 없잖아 있으나, 오늘날에도 유효한 포인트를 짚어줄 만큼 HCI 연구에 도움을 주는 책이랍니다. 이러한 배경을 지닌 책이기에 이토록 당당히 박물관 1층의 테마로 이름을 남긴 게 아닌가 합니다.
그렇다고 하여 박물관을 관람하기 전에 저 책을 미리 읽어야 하는 건 아닙니다. 해당 책은 교양 서적이라기보다 전공 서적과 다름없고, 무엇보다 1층 전시관을 컴퓨터의 마더보드(Motherboard)에 빗대어 신체 사이즈로 재현했다는 출발점 정도로만 이해하셔도 보는 데에 그리 큰 지장이 없어서입니다. 다만 차후 HCI 연구라든가 서사학(Narratology)이나 게임학(Ludology)을 공부하고 싶을 경우, 한 번쯤은 봐둘 필요가 있는데 이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는 논점상 생략하겠습니다.
과거 유물을 전시했다는 점에서 여타 박물관과 비슷해 보여도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친숙한 컴퓨터가 주인공이라 이색적인 공간입니다. 플로피 디스켓을 보며 반가워하는 부모님과 그 모습에 어리둥절하는 자녀가 있는가 하면, '라떼는 말이야'를 서슴지 않게 말하는 재미있는 광경도 꽤 자주 보였습니다. 20세기 후반과 21세기 초반이 공존하는 터라 세대를 초월하여 누구든 서로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더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은 따로 있었으니, 바로 2층입니다.
※ 공사 이전에는 아케이드 게임기가 원래 지하 1층에 있었습니다. 공사 기간 동안 임시로 2층에 옮겼으니, 공사 후에는 배치가 바뀔 수 있습니다.
게임 화면 앞을 벗어날 줄 모르는 자녀 이상으로 스틱을 잡고 게임에 열중하던 부모 세대도 심심찮게 보였습니다. 이처럼 훈훈한 게 또 있을까요? 게임을 사랑하는 이에게는 정말 근사한 장소임이 분명했던지라, 이후 일정을 취소하고 폐관 시간까지 머무르고 싶었습니다. 입장료만 한 번 내면 이 모든 게 무제한이니까요. 아, 또 가고 싶다.
그렇지만 넥슨 컴퓨터박물관의 볼거리는 저게 다가 아니라는 점.
아직 층이 하나 더 남았습니다. 3층 또한 눈도장을 찍을 필요가 있는데, 특히 아라드를 수호하는 데에 여념이 없는 독자께서는 통장 잔고가 두둑이 있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날이 갈수록 구하기 힘든 던파 굿즈를 득템할 수 있는 기념품점이 있거든요.
※ 공사 이전에는 기념품점도 원래 지하 1층에 있었습니다. 공사 기간 동안 임시로 3층에 옮겼으니, 공사 후에는 배치가 바뀔 수 있습니다.
단, 던파 굿즈를 구매하고자 하는 분은 좀 서둘러야 합니다. 재고가 그리 많지 않고, 품절 이후에는 재생산 계획이 없다고 들었답니다. 국내 취미 상품 시장의 특성상 재고가 동이 나면 그걸로 끝인 경우가 대다수이므로 꼭 손에 넣어야겠다면 망설이지 마세요!
한편, 기념품점 외에도 아래층 못지않은 전시로 관람객이 쉴 새 없이 찾아온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심지어 지금도 인상에 선명한 전시물이 떠오르는데 그것은 바로 미래의 꿈나무를 대상으로 한 프로그래밍 교육 작품이었습니다.
그밖에도 마우스와 키보드의 발전 과정이라거나 MIT 기계공학과에서 탄생한 4족 보행 로봇 미니 치타(Mini Cheetah) 등 구석구석 유익한 전시물이 자리 잡고 있었답니다. 뿐만 아니라 1층과 2층의 전시물도 본 글에서 다룬 것보다 훨씬 방대하니, 넥슨 컴퓨터박물관에 얼마나 많은 구경거리가 있는지 짐작하실 수 있겠죠?
다음 목적지는 네오플 사옥과 넥슨 컴퓨터박물관에서 그리 멀지 않은 한라수목원이었습니다. 꽃과 나무에 별 흥미가 없다 해도 그저 걷는 것만으로 힐링이 되는 게 수목원이죠. 여기에 더하여 한라수목원은 (제주도를 처음 찾는 이라면 더더욱) 무척 반할 만한 비장의 보물을 간직하고 있었답니다. 사실 직접 찾아가기 전만 해도 소문만 들었던 터라 실제로도 과연 굉장할 지 반신반의했었는데 …
한라수목원
주소: 제주 제주시 수목원길 72
관람시간: 오전 9시 ~ 오후 6시 (설/추석 당일 휴관)
입장료: 없음
공식 홈페이지: http://sumokwon.jeju.go.kr/
광이오름을 향해 걷는 내내, 산(山)의 제주 방언인 '오름'이 붙었으니 꽤 올라가야 한다고 예상했었습니다. 그러나 고도가 300m도 안 되어서 정상까지는 10분도 걸리지 않았답니다. 어쨌거나 가뿐히 오른 꼭대기에는 으레 있기 마련인 ―
비록 직접 다다른 건 아니었으나 한라산을 맨눈으로 아로새겼던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그랬기에 보람도 감동도 배가 되었고, 짧은 기간이었지만 제주에 참 오길 잘 했다 싶었습니다. 네오플로 성지순례를 다녀오리라 작정하지 않았더라면 이 광경을 볼 수 없었을 겁니다. 고맙게도 이 날 오후에는 날씨가 좀 맑아져서 제법 괜찮은 하늘이 보이기도 했어요.
이렇듯 한라수목원에서 제주의 멋진 비경까지 골고루 챙기고 나니, 제주도에 터전을 잡은 네오플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점심을 간단히 먹은 후, 산책겸 한라산을 보고 복귀하는 네오피플도 어쩌면 존재하지 않을까 싶을 순간이었습니다(정말 그럴지는 알 수 없지만…). 굳이 네오피플이 아니더라도 제주도에 한두 달 정도 생활하는 건 어떨까, 라고 조금은 진지하게 스스로에게 묻기도 했었고요.
한 번만으로는 아쉬울 수밖에 없었던, 오랜만의 제주 여행기가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 후로는 일상으로 돌아온 지 3주가 지났습니다. 봄과 겨울의 문턱에서 따스한 쪽으로 나날이 한 발짝씩 걷고 있는 가운데, 문득 지난 2월 제주의 풍경이 아른거리곤 합니다. 사옥 앞에 귤나무가 있는 네오플 게임을 즐기는 한, 이러한 상사병은 한동안 계속될 모양입니다.
그럼, 이것으로 성지순례 시리즈를 마칩니다. 조만간 또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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